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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교수님, 장편소설『차남들의 세계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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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과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37회 작성일 1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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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기호, 전두환 시대 다룬 신작 ‘차남들의 세계사’ 출간

글 김여란·사진 김정근 기자 peel@kyunghyang.com

ㆍ소설은 허구로 진실을 만드는 작업이니, 사실이 밝혀져야 하는데… 사실이 가려져 있으니 자꾸 뒤돌아 가게 돼

"잘난 사람들은, 독재 편에 섰든 독재를 반대했든 제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냈고 제 나름대로의 서사를 구축한 것 같아요.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대부분 다 잊혀졌습니다.”

소설가 이기호씨가 전두환 정권 시절 간첩 사건에 휘말린 어수룩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 <차남들의 세계사>(민음사)를 발표했다.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이야기꾼으로 알려진 이씨가 국가권력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소설을 쓴 건 처음이다.

‘전두환의 독재’라는, 예술과 문학에서 숱하게 변주돼온 시대를 이씨는 그만의 방식대로 다뤄 새로운 서사를 만들었다. 이씨에게 전두환은 누아르의 주인공이다. “독재자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가 스스로가 독재자가 되어버린, 누아르의 문법에 사로잡힌 수사관.” 부조리를 유쾌하고 장난스럽게 그리는 태도, 유머러스한 문체는 여전하다.

“십팔년간 장기 집권했던 독재자가 죽어 이제 숨 좀 쉴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웬 대머리 수사관이 그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으니(…).” 작가는 전두환이 당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에게 보낸 카드에 “형, 고마워요. <007 시리즈> 계속 만들어주세요”라고 썼을 거라 상상하기도 한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이 전두환은 아니다. 작가가 쭉 그래왔듯 어수룩하고 좀 모자란 인물, 고아 청년 나복만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큰형님 전두환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각종 ‘차남’들이 등장한다. 택시기사 나복만은 어느 새벽 자전거 탄 소년을 우연히 살짝 차로 치었다가 양심에 찔려 경찰서를 찾는데, 형사의 실수로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 연루자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다. 단순한 사고로 끝날 수도 있던 일들이 가진 자들의 비밀, 욕망과 마주쳐 커다란 간첩 사건이 생겨나고 그 한복판에 나복만이 놓인다.

소설은 2부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작가 특유의 넉살과 유쾌함이 줄어든 대신, 굉장히 고통받았지만 그 고통을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기억되지도 못한 모자라고 외로운 인간에 대한 진지한 기록이 담겼다. 이씨는 “처음에는 1부처럼 소동극으로 소설 전체를 쓰려고 생각했는데, 나복만이 고문당하는 부분을 쓰면서부터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작가는 ‘진도 간첩단 사건’의 고 김정인씨가 사형을 선고받고 판사에게 쓴 편지를 우연히 본 뒤 소설을 처음 구상했다. “ ‘판사님, 죄없는 사람에게 사형은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형벌만 주십시오’ 같은 내용이었어요. 맞춤법도 틀리고 짧은 문장 몇 개였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때 1980년대 초반부터 잊혀진 조작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범한 어부였던 김씨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한 달 넘게 고문을 받고서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한 사실이 있다’는 허위 진술을 하고 1985년 사형당했다.

< 차남들의 세계사>에 앞서 <소년이 온다>(한강), <투명인간>(성석제) 등 우리 현대사를 조명한 중견 작가들의 소설이 올 들어 여럿 출간됐다. 이씨는 이 같은 경향이 현재 우리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봤다. “소설은 허구로 진실의 영역을 만드는 작업인데, 사실이 밝혀져야지 거기서 진실을 추출해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은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당대의 사실조차 굉장히 가려져 있기 때문에 자꾸 뒤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처음 쓸 때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막 1년이 지나가는 시기였는데, 제 감수성이 많이 훼손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전까지 소설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 거라고 여겼는데 단순히 그게 아니구나, 의미를 찾아야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 변사처럼 곧잘 등장한다. 소설의 각 장은 ‘자, 이것을 들어보아라’란 말로 시작하는데 작가는 매번 독자들에게 뻔뻔하게 특정 태도와 자세를 요구한다. 누운 채, 똑똑히, 엎드린 채, 각자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각자 지닌 비밀을 떠올리며, 성난 표정으로 등 앞으로 풀어놓을 이야기에 따라 다르다. 나복만이 고문당하는 장면 앞에는 ‘듣기 싫어도 엉덩이에 힘을 준 채, 억지로라도 계속 들어보아라’라고 말한다. 괄호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이봐, 친구. 자네는 어떤가? 자네는 지금 이 부분을 어떻게 읽고 있나?’라고 묻기도 한다. 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소설을 각자의 삶과 연관시키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2009년에 쓰기 시작한 소설을 마치는 데 5년이 걸렸다. “작년에는 소설을 마무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굉장히 아픈 현대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 나는 자리에 앉아서 그걸 소설화시키고 있다는 게 스스로 비겁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소설을 쓰면서 변했어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이런 시대일수록 소설가들이 어떤 의미를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저도 많은 선배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힘을 얻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운 적이 꽤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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