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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창작과 대학원생 오선덕 시와사람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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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과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92회 작성일 1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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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대학원 수료생이신 오선덕 선생님이 [시와사람] 신인상 시부문에 당선되었습니다

축하 말씀을 드리며 당선작 외 4편과 함께 당선소감을 올립니다.

 

 

의자

 

눈 내리는 빌딩숲 저 너머로

사라지는 꼬리가 긴 별똥별 하나

 

복숭아 빛 열네 살 꿈

또다시 낯선 땅 위로 흩어진다.

 

황토마당에서 뛰놀던 단발머리 소녀

누가 있어 기억해 줄까.

 

떠나지 못한 마른 잎새들의 노래

자꾸만 들린다. 그것들 마디마디

 

아픈 상처들로 짓무르는 저녁

소녀가 의자 위에 홀로 앉아 있다.

 

그 위로 차곡차곡 쌓이는 눈송이들!

 

 

 

밤거리

 

자정 무렵 인적이 끊긴 거리

가로등 불빛이

불 꺼진 가게의 유리창 안을

하나씩 엿보고 있다.

 

날렵하게 쭉 빠진 신발.

반질반질 윤기 나는 바게트.

뭉툭한 체형을

잘 감싸줄 수 있는 원피스.

 

아스팔트 위에는 전단지들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 위로, 살며시 발자국이 찍히는

길모퉁이, 거기 리어카 하나 있다.

 

흩어져 있는 상자들 사이

쭈그려 앉아 있는 할아버지

느릿느릿 상자를 펴고 있다.

 

곁을 바짝 지키고 있는 리어카 안으로

차곡차곡 끼니를 밀어 넣는 손.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가로등 불빛.

 

 

 

허수아비 풍선

 

기역자로 꺾인 허리, 납작 엎드린 몸

축 쳐져 있는 채 말이 없다.

매일 반복되는 스위치를 올리자

어김없이 춤을 춘다.

두 팔 힘껏 휘저어 누군가를 부르다가

허공에 빈 몸짓만 그린다.

윈도우 위로 햇살이 녹는 저녁 시간

여기저기 토해내는 이야기들

비어글라스에 가득 채워진다.

마시고 나면 이내 다시 쏟아지는

하얀 거품들, 둘러앉은 신발들

서로의 무게를 저울질하는데

껌 딱지처럼 많은 명함들 위로

이름 없는 발자국들이 다녀간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불빛 더욱 환해지는데

보도블록 위로 발자국들 떠나는 시간

의미를 잃은 붙박이의 하루

스위치 내리는 소리와 함께

온종일 흔들던 제 몸, 별빛 아래 접는다.

 

 

 

발톱

 

발톱을 숨기고 있다. 언제 발톱 쫙 펴고 포식의 순간을 낚아챌는지 모른다.

 

풀어헤친 긴 검은 머리카락, 허공을 메운 날개깃,

 

숨을 죽이며 몰려오는 태양의 포식자가 회색빛 도시의 정수리 위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너덜너덜 찢긴 심장의 고동으로 떨어져 내리는 눈물의 광시곡, 다 쏟아낸 어느 날 오후,

 

포식자의 날카로운 발톱, 끝내 뜨거운 가마솥뚜껑 안으로 숨는다.

 

 

 

 

모노드라마

 

바람이 분다.

이파리들의 날갯짓이 서럽다.

붉은 옷을 입은 나비들

날아간다.

 

빈 들판 위에 씌어지는

가난한 이름들.

숨 가쁜 나날들.

그렇게 잊혀버린 것들.

 

눈이 내린다.

들판을 덮고 있는 것들

그것들의 이름,

천천히 불러본다. 묵직하게

흘러내리는 것들.

 

 

 * 당선 소감

  사람들의 가슴 아랫목을 따뜻하게

 

  법정스님은 그의 유서에서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라고 하며 인간의 우월성을 이 선의지(善意志)에 두었다. 선의지(善意志)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결한 마음이 아닐까. 스님은 어릴 적 동무들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엿장수를 속이고 엿을 슬쩍한 일이 평생을 그림자처럼 쫒아 다녔다고 하며,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법정스님의 선의지(善意志)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하고 비뚤어지고 기계화 되어가는 삭막한 세상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여러 고비들이 있다. 옆에 있는 누군가의 고비를 알아채고 같이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이 그리운 시절이다. 노동 끝에 풍기는 땀 냄새가 고귀한 행위의 결실임을 서로의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살맛나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수없이 해본다. 사람들의 가슴 아랫목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아직은 시인이라 불리기엔 많이 부족하다. 이번 당선을 계기로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한다. 늦깍이로 들어온 제자를 아낌없이 격려해주고 오늘날까지 이끌어주신 이은봉 교수님과 광주대 문창과 교수님, 스터디 여러 문우님들께 감사드린다.

 

시와사람 신인상-심사평

소소한 일상, 따스한 정서

 

오선덕 · 윤지원 등 두분을 신인상 당선자로 선정한다.

두 분은 소외된 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따스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시적 정서를 형상화하는 데는 각기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다.

오선덕의 작품들은 비교적 말을 아끼고 간결하다. 그런 까닥에 감정이 넘치지 않고 절제되어 시상이 명료하다.

「의자」에서 '의자'라는 가구는 사전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외로운 열세 살 소녀의 실상을 나타내는 기표다. 열네 살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공간성 · 시간성을 기의한다. 「밤거리」「허수아비 풍선」「발톱」은 자본문명의 뒷모습인 중심부에서 밀려난 자들의 신존을 정물화된 풍경들을 통해 드러낸다. 이 시편들이 꿈틀거리는 동세 보다는 정지된 회화적인 풍경들을 제시하여 그것들이 스스로의 의미를 밝히도록 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자정 무렵 인적이 끊긴 거리" "가로등" "전단지" "리어카 하나" "고물을 줍는 노인"(「밤거리」) '날마다 춤을 추는 허수아비 풍선', '비어글라스에 채워지는 술' '술집에서 이야기하는 손님들' (「허수아비 풍선」) 등에서는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압축된 시어를 통해 읽게 한다. 특히 도시가 숙명적으로 안고있는 불안과 폭력성을 간결하지만 잘 빚어낸 「발톱」은 오선덕 시인의 시적 상상력과 형상화 능력을 잘 보여준다.(중략)

신인상은 앞으로 시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뿐이다. 더욱 정진하여 큰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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