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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박혜은, 제25회 의혈창작문학상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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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과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15회 작성일 15-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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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인간이 이룩한 문명보다 위대한 것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이승하)

 

시부문은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고 여겨지며 수준미달의 작품은 없었다. 그 중 4명의 작품을 유심히 보았다. 「항우울」등을 투고한 박선희 충청대는 상상력이 비상하고 대단히 감각적인 시적 표현을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아쉬운 점은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왜 써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시는 자신을 향해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려 쓰는 것임을 명심하기를.

「염탐의 새벽」등을 투고한 민성재 명지 전문대는 1학년 학생답지 않게 무척 세련된 현대적인 어법을 구사했다. 다소 엉뚱한 발상과 도발적인 펀(pun)이 말의 맛을 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가 전반적으로 가벼워 말의 ‘맛’은 있지만 ‘멋’은 부족했다.

서울대 국문학과 4학년 강민호와 광주대 문창과 4학년 박혜은의 작품은 성향도 다르고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장고를 이틀을 두고 했다. 바둑의 ‘봉수’처럼 「청보리 밭에는 검은 시체」외 6편을 투고한 강민호의 시는 시적대상에 대한 끈질긴 대결의식과 유머를 동반한 상상력 발휘가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데 한편 예외 없이 산문시였고 다변과 달변이 시를 읽는데 방해가 되었다. 시는 독자가 집중력을 갖고 끝까지 읽게 해야 하는데 몰입도 유지가 쉽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의 1억년 일지」외 9편의 시를 투고한 박혜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세련된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지 못한 ‘구닥다리’였다. 하지만 어떤 시적 대상이든 조심스럽게 다루는 진지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색의 깊이를 느끼게 해 앞날에 신뢰감이 가게 했다. 모더니즘으로 가장한 말의 성찬은 자칫 잘못하면 공허해지기 쉽다. 이 시와 「사임당」은 독특함이나 특이성은 없지만 존재 혹은 생명에 대한 명상이 철학적 깊이를 담보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화석 나무 메타세쿼이아의 일생과 진화의 역사를 더듬어 나간 당선작은 유한자인 인간과 인간이 이룩한 문명보다 위대한 태곳적부터의 생명의 위대한 자연 적응력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주는 명작이다.

 

 

작품 (2편)

 

 

메타세쿼이아의 1억 년 일지

 

 

누구일까

끝이 뾰족한 그리움, 치솟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하늘 향해 불쑥 밀어 올린 이는

 

살아있는 화석나무 메타세쿼이아

문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 그는 강가에 처음 뿌리를 내렸다

긴긴 시간 동안 곁이 간절했으나

옆으로 퍼지려던 가지는 닿을 데 없었다

홀로 우뚝 서려면 점점 더 높이 자라날 수밖에

 

이따금 빙하기가 찾아오면

얼어붙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점점 더 단단해지고 두꺼워진 몸피

따스함을 알기 위해서는 추위를 먼저 겪어야 한다는

오래된 가르침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로써 그의 외로움은

1억 년 전부터 내려 온 인류의 생존 일지인 셈

촘촘히 돋아난 깃털 같은 나뭇잎은

꼼꼼히 써내려간 나날의 기록이다

둥글게 맺힌 열매는 오늘의 마침표

 

페이지가 꽉 차는 계절은 언제나 가을

추억으로 물든 그는 팔을 양옆으로 늘어뜨리고

손끝을 떨며 갈색으로 빛이 바랜

잔가지를 한 장 한 장 떨어트린다

 

겨울을 맞을 때는 언제나 경건한 마음

정수리까지 쌓인 눈이 새하얗게 탈색한

외로움의 그림자

메타세쿼이아는 수피를 수직으로 벗는다

고독을 벗는다, 새 기록장을 준비한다

 

 

 

사임당

 

 

무궁화 품종 중에

사임당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꽃잎파리는 엄격한 순백색

섬세하게 그린 한국화처럼 혹은

현명한 어머니의 엄한 꽃그늘 그

아래에서 자란 명필가가

한지 부채에 행초로 쓴 연서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겹꽃이다

 

수목원에서 처음 만난 사임당

아니 처음 뵈었다고 해야 할까

한없이 정하고 꼿꼿한 꽃 수술,

흔히들 단심이라고 한다는

그 우아한 기백 앞에서

흔들리던 방심이

한소끔 끓고 난 찻물처럼 잠잠해진다

 

살면서 제대로 꾸지람 받은 적,

몇 번이나 있었던가

꾸지람을 듣고

자연스레 고개를 떨군 적은 또 얼마나

수목원을 돌아 나오며 나는

방명록을 남겨달라는

관리인의 말에 마침표를 찍는다

―경의를 표함, 무궁화의 부덕(婦德)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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